<오징어 게임> : 동양인들의 학살 게임을 관음하는 서양 백인들
'오징어 게임'이라니 제목부터 안 끌렸다. 그런데 하도 재미있다길래,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길래, "오징어 게임 정말 죽여준다. CNN 등 외신들도 엄지 척", "1주일만에 팔로워 2천배 늘었다"…오징어게임 덕에 글로벌 인싸됐다, 누구?", "오징어 게임 효과? 달고나에 푹 빠진 호주 사람들" 이런 기사들이 속출하길래 진짜 뭐가 있는 건가 싶어서 속는 기분으로 봤다.
결론부터 말하면 역시나 취향이 아니었고 시간 낭비였다. 10초 빨리 감기 해가며 봤으니 9회 에피소드를 4~5시간 만에 주행한 셈인데 솔직히 그 시간도 진심으로 아깝다. 이 후기를 작성하는 시간도 아깝지만 얼른 다 쓰고 이 드라마를 내 머릿 속에서 지워버려야겠다. 아직 볼까 말까 고민 중인 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.
이정재가 연기한 성기훈이란 인물은 착한 쓰레기, 약한 쓰레기의 전형이다. 찌질하고 위선적인데 본인이 착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선택적으로 착하게 구는 인간이다. 시장판에 야채 팔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노모 등골 빼먹으며 살아온 주제에 게임에서 처음 만난 할아버지에겐 어지간히 살가운 아들 코스프레를 한다. 마지막엔 할아버지한테도 똑같이 사기 칠 거면서. 착한 척 하지만 착하지 않은 하류 인간. 게다가 무능하다.
무능한데 성실하지 않은 건 죄악이다. 노모 통장에서 몰래 뽑은 돈을 도박으로 날려서 딸 생일 선물을 기계 뽑기로 대신하는데 심지어 그것도 혼자 힘으로는 못 해서 다른 꼬마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해낸다. 정말 무능 그 자체. 노모의 건강이 위중한 상황에서 이혼한 전처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는데 전처의 현 남편이 주는 돈다발을 또 썩은 자존심 내세워가며 거부한다. 정말 효자라면 납죽 엎드려서 그 돈 받은 다음 노모 치료해드렸어야지.
한편, 무표정으로 "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?"만 연발하는 의심 많은 탈북자 강새벽은 캐릭터 자체는 괜찮았지만 배우 정호연의 연기가 상당히 어색했다. 모델 출신으로 <오징어 게임>이 첫 연기 데뷔라더니 몸 쓰는 건 잘하는데 대사 치는 게 역시 능숙하지가 않다. 무뚝뚝하고 감정이 무딘 역할이라 그나마 눈에 띄지 않게 넘어갔다.
<오징어 게임>에서 가장 수혜를 많이 받은 배우가 정호연이라고 하는데 인스타 팔로워 수가 40만 명에서 25배 증가해 960만 명에 육박한다. 배우의 연기나 캐릭터가 미친 듯이 매력적이었다기 보다는 설정이 "탈북자" 라서 관심이 더 증폭한 게 아닌가 싶다. 아직도 Do you know Korea? 하면 북한과 김정은 밖에 모르는 외국인들이 태반이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제일 하고 싶어하는 게 판문점, DMZ 안보 관광 투어다.
그래도 정호연은 첫 연기치고는 선방한 셈이고 다른 여배우들과의 티키타카도 매우 좋았다. 김주령(한미녀), 이유미(지영)가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 서로 케미가 잘 살았다. 특히 이유미는 영화 <박화영>에서도 되바라진 비행 청소년으로 나왔는데 이런 류의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연기를 참 잘하는 것 같다.
그런데 이정재의 연기는 아무리 봐도 아쉽다. 1993년에 데뷔했으니 연기 경력이 30년인데 진짜 무슨 일일까. 지난번 이정재 포스팅에서 식상 과다에 사주 구조가 너무 단순해서 표현력이나 깊이가 떨어진다고 썼는데 그 포스팅을 쓴 시점은 1화 첫 부분만 잠깐 봤을 때였다. 그런데 10분만 봐도 알겠더라.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대박을 쳐버리니 "이정재 찌질한 연기도 잘해" 이런 기사도 나온다. 그냥 성공하면 장땡인가 싶다.
연기 참 자연스럽고 실제 인물같다고 느낀 건 배우 박해수.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증권맨 역할을 맡았는데 엘리트 특유의 이지적인 느낌을 정말 잘 살렸다. 캐릭터도 매우 입체적이고 공감이 간다. 게임의 룰을 잘 분석해서 지능적으로 게임에 임하며 마지막에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그마저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인물이다.
<오징어 게임>에서 매우 거부감 들었던 건 외국인 VIP 설정이었다. 돈은 많지만 일상의 쾌락과 자극이 부족했던 외국 VIP 들은 절박한 465명의 동양인 서민들의 서바이벌 살육 게임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한다. 그런데 왜 하필 이 VIP 들을 서양 백인들로 설정한 건지 매우 불편하다. 실제로 넷플릭스 <오징어 게임> 드라마에 열광하는 해외 시청자들도 가면만 안 썼다 뿐이지 똑같지 않나.
<오징어 게임>은 동양인들끼리 서로 학살하는 게임을 관음하는 서양 백인 VIP 들의 이야기다. 돈에 혈안이 된 동양인들이 인간성을 상실해가며 서로를 잔혹하게 살육한다. 여자는 폭행당하고 약자는 희생된다. 이 이야기에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있다. Do you know Squid Game? 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운가?